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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악가 이동규를 처음 알게 된 건 팬텀싱어 4의 예선 무대에서였습니다. 고음의 카운터 테너의 선구자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너무 늦게 알게 되었네요. 미디어의 힘은 정말 큰 것 같습니다. 또한 미디어의 순기능을 잘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에게 좋은 노래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알게 해 주며 음악가들에게는 무대와 큰 기회를 주기 때문이죠.

    성악가 이동규 [출처 팬텀싱어4 JTBC]

    카운터 테너 이동규는 월드클래스의 실력자입니다. 10년 전에 국립오페라 단에서 심사위원 손혜수와 함께 공연도 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제자육성과 더불어 무대에서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높은 평판이 있는 성악가는 관객과 심사위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공연을 보여주면 쌓아 두었던 커리어까지 위협을 받게 되어 더욱 큰 결심과 리스크를 안고 나와야 하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이동규 스스로도 많은 나이와 함께 공연을 했던 동료가 심사위원으로 있어서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레스텔라와 같은 팀을 너무 하고 싶어서 팬텀싱어 4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참여무대에서 여유 분위기 농익은 음악을 겸비한 그의 실력은 관객들과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제는 팬텀싱어 4에서 '포르테나(Fortena)라는 남성 4 중창 보컬그룹을 결성하고 소중한 인연을 만났으니 더욱 멋진 하모니를 들려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간단 프로필

    • 나이: 46세
    • 결혼 유뮤: 무
    • 키: 180cm
    • 취미:요리
    • 혈액형: AB 형
    • 나를 표현하는 한마디: 한국 카운터테너계의 선구자
    • 좋아하는 노래: 뮤지컬 '매이슨카운티 다리' OST들
    • MBTI: INFJ
    • 학력 : 밴쿠버 음악 아카데미(전액 장학금)

    1978년 2월 11일생(46세)으로 한국나이로는 46살입니다. 하지만 2023년 만 나이를 시행하는 6월 1일부터는 44세가 됩니다. 1978년생은 말띠 무오년입니다. 

    공연/ 수상경력

    프란시스코 비냐스 국제 성악 콩쿠르 (바르셀로나, 스페인) -1등 우승 + 6개부문 특별상

    -Francisco Vinas International Competition (Barcelona, Spain) 

     

    무지카 사크라 국제 종교음악 콩쿠르 (로마, 이태리) - 동양인 최초 1등 우승

    -Musica Sacra International Competition (Rome, Italy) 

     

    조지 런던 콩쿨 (뉴욕, 미국)- 우승

    -George London Competition (NY, USA)

     

    미리엄 헬린 국제 성악 콩쿨 (헬싱키, 핀란드) - 3등 우승, 최초 카운터테너

    -Mirjam Helin International Competition (Helsinki, Finnland) 

     

    카디프 세계 국가대표 성악가 콩쿠르 (카디프, 영국) - 콘서트2 우승

    -BBC Cardiff Singer of the World Competition (Cardiff, UK) BBC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콩쿨 (뉴욕, 미국) - 2등 우승

    -Young Concert Artists International Competition (NY, USA) 

     

    로자 폰셀 국제 성악 콩쿨 (뉴욕, 미국) - 5명의 결승자

    -Rosa Ponselle International Competition (NY, USA) 

    어린 시절

    상당히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 전까진 걱정 없이 자랐습니다. 유년기에는 '월드비전 어린이 합창단'과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1991년 14살의 나이로 캐나다 밴쿠버로 조기 유학을 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업실패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만 15살의 나이에 5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고등학교때는 고등학교 합창단에서 노래를 했으나 진로를 결정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매력을 느끼는 고음 음악대는 남자성악가가 부르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음을 부르려면 여장을 하고 불러야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성악가로서 꿈을 꾸게 된 것은 1996년 한창 대학진로로 고민을 하던 때 한 친구가 '파리넬리에 너처럼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나온다 는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보게 되는데요. 영화를 보고 감동과 충격을 느끼면서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성악의 매력에 빠진 뒤 여윳돈이 생기면 카운트 테너와 바로크 음악 CD를 사는 것에 모두 썼고 그렇게 성악을 독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브리티시 컬럼비아 소년 합창단에 들어갔고 지휘자의 도움을 받아 대학 오디션을 보게 되었죠. 맥길대학교를 포함한 모든 곳에 합격했으나 전액장학금을 지원받고 밴쿠버 음악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여기서 필리스 메일링이라는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가 캐나다 어머니로 표현할 만큼 큰 은사님이죠. 성악에 대한 여러 가치은 물로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대학을 들어간 직후인 18세부터 성악활동에 매진했으며 최연소로 헨델 <메시아> 프로 데뷔, 다음 해인 97년엔 뉴욕 로자폰셀 국제 콩쿠르 최연소 수상, 오페라 주연 데뷔, 9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최연소 수상 등 빠르게 성장합니다. 이후 각종 오페라와 무대를 선보였으며 2018년부터는 제자양성을 하고 있고 2020년부터는 코로나19로 많은 공연이 취소되었으나 이렇게 팬텀싱어로 나오게 되어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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